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저스 앤 메리 체인 (문단 편집) == 상세 == 음악을 들으면 알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섹스 피스톨즈]]와 [[펑크 록]]를 듣고 충격을 받아 뮤지션이 되기로 한 케이스다. 당연히 그룹을 만들었을 때, 아무도 기타를 제대로 치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 하지를 못했다. 윌리엄은 이에 '우리는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위대한 뮤지션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섹스 피스톨즈]] 말고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기 팝]], [[샹그리라]][* 1960년대 활동했던 버블검 그룹. 빠심이 장난 아니여서 윌리엄은 우리는 샹그리라 같은 밴드가 될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비치 보이스]], [[비틀즈]], [[필 스펙터]], [[라몬즈]][* 특히 초기 데모는 라몬즈 영향이 짙었는데, 본인들이 노이즈를 추구하게 된 계기도 그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비교대상으로 언급되는 [[소닉 유스]]가 [[현대예술]]의 무조/노이즈 흐름에 영감을 받아 의식적으로 실험을 추구했다가 일반적인 로큰롤로 다가가는 쪽이였던것과 대조된다.] 같은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한동안 형제는 그 당시 영국 청춘들이 그랬듯이 [[실업자]]로 지내면서 [[양귀비꽃|포피 시드]], 데스 오브 조이 같은 이름으로 음악 만들고 빈둥빈둥 지내다가 지금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윌리엄 리드가 밝히길 "그땐 다들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고 있던때라 기타 밴드 데뷔하기 좋았다"라고.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라는 이름은 한때 [[빙 크로스비]] 영화 대사에서 따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본인들이 부정했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아침 [[시리얼(음식)|시리얼]] 포장에 있던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있다. 정작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시작한 뒤로도 스코틀랜드에서는 딱히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음악 성격도 음악 성격이고 후술하겠지만 리드 형제 무대 매너도 불친절하기 그지 없는데다 공연도 평균 20분 정도로 매우 짧아서 (...) 여러모로 악명높은 공연중 하나였다. 그래서 [[런던]] [[풀럼]]으로 넘어갔다가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앨런 맥기]]와 맥기와 친했던 [[프라이멀 스크림]]의 바비 길레스피가 그들의 데모를 받으면서 [* 이 데모는 아버지가 해고당해서 얻은 퇴직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앨런 맥기는 이들을 주목해 매니저를 자청하면서 자기 레이블과 1회성 계약을 했고 그들은 "Upside Down"이라는 데뷔 싱글을 내놓게 된다. 이 데뷔 싱글이 인디 히트를 기록하고 [[NME]]가 주목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동시에 바비 길레스피도 드러머로 합류하게 되고 [[워너 브라더스]] 산하의 블랑코 이 니그로가 계약을 제안하면서 그들은 첫 앨범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싱글이 엄청 잘 팔렸던 것은 아니였지만 특유의 공연이 논란을 일으켰고 그렇게 나온 첫 앨범 [[Psychocandy]]는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섹스 피스톨즈 노이즈 피드백으로 쏘아대며 울려대는 기타와 그와 대비되는 낮고 게으른 목소리와 달콤한 멜로디가 결합된 이 앨범은 새로운 음악적 방법론과 동시에 [[슈게이징]]의 단초를 제시했다는 격찬을 받으며 [[슈게이징]] 씬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앨범으로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1980년대 영국 인디 록을 평정하게 된다. 대서양 건너 [[소닉 유스]] [* 실제로 소닉 유스랑 합동 공연도 한 적이 있다.]랑 더불어 노이즈 록의 총아로 떠오르게 되고 지금도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판매량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골드 레코드를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Some Candy Talking EP 발매 후 바비 길레스피가 [[프라이멀 스크림]]에 집중하러 밴드를 떠나게 되고 [* 바비 길레스피하고는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지 2017년 포르투갈 공연에서 길레스피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 연주하기도 했다.] 본인들도 노이즈 록/슈게이징의 총아로 불리는걸 피곤해하더니 두번째 앨범 [[Darklands]]는 드럼 머신의 도입과 팝 멜로디 성향의 강화로 이어졌다. 전작 [[Psychocandy]]와 반대되는 경향이였지만 반대로 강렬한 노이즈 피드백 뒤에 숨어있던 이들의 작곡 실력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격찬과 동시에 그들 커리어 사상 대박을 치게 된다. 그 다음 앨범인 Automatic은 노이즈 록/팝의 기조는 여전했지만 전작보다 신시사이저랑 드럼 머신이 강화된 나머지 영국에서 판매량과 달리 다소 애매한 평가를 받았으나 수록곡 'Head On'이 미국 차트에서 먹혔고 이는 이들의 이후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마침 [[얼터너티브 록]]과 [[인더스트리얼]], [[매드체스터]]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이들은 다음작 [[Honey's Dead]]에서 그 열풍에 동참하게 된다. [[스매싱 펌킨스]]와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나인 인치 네일스]]와 같이 작업했던 [[플러드]]와 [[앨런 모울더]]를 기용해 음악 스타일을 완전히 일신하고 동료였던 [[프라이멀 스크림]]의 [[Screamadelica]]처럼 [[매드체스터]]의 댄서블한 리듬도 받아들인 이 앨범을 통해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미국 진출에 신경쓰게 된다. [* 실제로 대히트는 아니였지만 [[롤리팔루자]]에도 참여하고 미국 맥주 광고에 음악이 나오는 등 성과가 있었다. 말기에 가면 미국에서도 공연이 매진이 될 정도로 인지도를 얻게 된다.] 이 시절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과 [[블러(밴드)|블러]], [[다이노소어 주니어]]를 백업삼아 순회공연을 도는 대형밴드였다. 이런 변화는 아예 노이즈를 벗어버리고 포크 록으로 극대화된 [[Stoned & Dethroned]]에서 극대화된다. 하지만 대형 투어가 가져다 주던 피로와 미국 상업주의에 실망해가던 형제 사이에선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때마침 블랑코 이 니그로가 문을 닫는 악재가 이어지면서 4년동안 침묵을 가지게 된다. 앨런 맥기가 [[크리에이션 레코드]]로 그들을 데려오고 미국에서는 [[서브 팝]]과 계약하면서 어찌 구제받긴 했으나 형제 간의 불화는 어쩔수 없었다. 1998년 마지막 앨범 [[Munki]]를 녹음할때쯤 서로 얼굴도 안 보고 따로 녹음할 정도로 불화는 극대화되었고 결국 Munki 투어 도중 윌리엄 리드가 탈퇴해버리고 공연도 제대로 펑크내버리는 사고를 터트리고 만다. 결국 예정된 월드 투어 종료후 해체했다. 짐 말로는 서로 죽이고 싶어했을 정도였다고. 해체 이후 다들 솔로 활동으로 들어갔지만 그다지 주목은 못받았다. 2007년 형제간의 불화가 완전히 청산되었는지 재결합을 선언했고 지금도 잘 다니고 있는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